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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뮤엣인류이야기
[역사/문화] 고대 로마 어린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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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고대 로마 어린이들의 삶에 관한 글 입니다.
고대 로마 어린이들의 삶은 과연 현대의 어린이들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서 직접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회학자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부모들은 현대 만큼이나 아이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높은 영아 사망율 때문인데요, 산업 혁명후 점차적으로 국민에 대한 복지와 삶의 질이 나아짐에 따라서 영아 사망률이 줄어들면서 여기에 대해서 부모들의 걱정도 점진적으로 줄어들며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줄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사회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고대 로마는 그래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린이를 그 이후 시대보다 존중했던걸로 보여지는 역사적 자료들이 여러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어린이들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일꾼 또는 인재이기에 어린이에대한 기대와 희망이 컸었던걸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것도 중요한 국가적 관행인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대 로마 벽화들에 묘사된 고대 로마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현대의 어린아이들과 크게 차이 나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고 순수하게 밖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뛰어노는 모습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요즘 현대 한국아이들과의 차이점으로는 하교후 여러 학원에 다니는 것과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래도 지금과 같이 사회적으로 어느 일정 나이가 되면 그 나이가 걸맞게 행동해야되는 관습이 있었으며 이런식으로 고대 로마 사회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대 로마 어린이들의 삶
고대 로마 시내는 아이들로 시끌벅적 했다고 합니다.
무려 로마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15세 이하였으므로, 시내 길거리에서 뛰놀거나 일하는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러한 고대 로마 시대의 어린이들에 대한 연구는 과거에는 무시받아왔었지만 최근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제대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대 로마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들로 여겨졌으며 이 시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으며 각 계급에 따라서 어린시절의 경험도 다양했습니다.
당연히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와 귀족의 자제는 다른 어린시절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 어린이들의 생활상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가 가능한 자료들은 대부분 귀족들이 살았던 집과 동네에서 많이 발견되어지며, 일반적인 고대 로마의 어린이들에 대한 정보는 증거 불충분으로 자세한 사항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고대 로마 특유의 남성중심 사회로 인해서 여자 아이에 대한 자료들은 사내아이에 비해서 극히 드뭅니다. 이러한 이유는 보통 고대 로마의 작가들은 귀족 자제들 중 사내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며 이러한 작가들또한 남성들이므로 자신의 유아시절에 대해서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귀족 자제들은 낙타도 타고 저런 거대한 새가 끄는 전차를 타면서 놀았나보군요. 지금으로보면 슈퍼리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스포츠카 타고 다니는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출생과 보살핌
고대 로마에서 출산하는 산모 곁에는 산모의 여자 친척들이나 산파가 있었으며 출산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신생아가 나오면 바로 피범벅인 아기를 목욕시키고 포대기로 감싸 아기의 아버지한테 전달되었습니다.
아이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집 문앞은 월계수관이 걸려 있으며, 친구들이 와서 축하해주었습니다.
출생 첫날에는 아이를 사회또는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특별한 의식을 했으며, 사내 아이는 출생 8일째 여자 아이는 9일째 되는날에 '정화의날' (Dies lustricus)라고 하여 이미 죽은 조상 또는 친척의 이름으로 작명을 했으며 가족의 계보를 나타내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작명을 해주는 것은 아이가 몇일 동안 생존해내어 드디어 정식적으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자유민 신분을 가지고 있는 소년들은 보통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bulla라고 불리는 목걸이를 찼습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신생아가 이름을 가지기전까지는 부모는 그 신생아의 출생에 대한 거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제대로된 피임이 힘든 가난한 가정은 이 거부권이 어느정도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많은 가난한 집의 신생아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의 한구석에 버려지기도 했으며 이는 다른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거두어져 길려지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몇년 간은 모유수유때문에 자기를 잉태한 친어머니 아래에서 키워졌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마찬가자로 고대 로마에서 자연스러운일 이었습니다.
보통 로마에서 출생하자마자는 모유수유보다는 꿀물을 먹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특별히 디자인된 젖병이 있었으며 모유수유 이외에도 따로 염소 젖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유한 계층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고용된 대리모(Nutrices)와 여성 노예로부터 젖을 받기도 했답니다.
고대로마의 부유한 집에서는 따라서 이러한 대리모와 노예들이 아이 교육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가정교사 역할을 하며 집안팎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시켰습니다.
고대 로마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인성교육과 사회성 함양을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만일 아이가 외동으로 자라거나 주변에 비슷한 또래의 여자나 남자 형제가 없다면 따로 비슷한 또래의 노예 또는 하인들의 자식과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잘사는 집에서는 길에 버려진 고아들을 입양 (alumni)하여 자신들의 아이들과 어울리게했습니다.
Piates: 유년시절과 가족관계
비록 엘리트층의 아이가 따로 돌봐주는 사람의 손에서 컸을지라도, 부모님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교육과 사회성 함양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시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야했습니다.
아이들은 법적으로 아버지가 죽기전까지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 있었으나, 로마제국기 때부터는 아이가 점점 청년으로 커갈수록 아버지의 강한 컨트롤 받는 것으로 부터 점점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만일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가 성인이 되기전에 사망하면, 따로 보호자가 정해지며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이를 책임지도록 하였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집에서 가정교육을 시켰으며. 여자아이들은 어미니로부터 가정살림 하는 법 그리고 어머니( matronae) 로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pietas (즉 우리말로 효심, 가족간의 민음 또는 신뢰)는 로마사회에서 아주 중요했으며 모든 로마 시민들이 지켜야할 덕목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로마또한 어린아이는 윗어른을 공경하였으며 가족의 어른들은 이러한 어린이들을 잘 보살필 책임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사망 그리고 재혼에 의해 남겨지거나 버려진 아이들은 간혹 삼촌과 이모 그리고 한 쪽 부모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의해서 길러졌습니다.
고대 로마사회는 친척을 통해서 주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는데, 이러한 경우 아이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복잡한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므로 자라면서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 여자와 남자 어린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문화적으로 보통 유아기의 끝을 청소년기와 결혼으로 봤습니다.
고대 로마 사회에서 법적으로 정한 결혼 가능 나이는 여아는 최소 12살 그리고 남아는 14살 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고대 로마 여성들은 10대 후반에 결혼을 했으며 엘리트층일 수록 그 결혼 연령은 더 낮았으며 보통 1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 전에는, 여자 아이들은 일종의 의식으로 유아시절 가지고 놀았던 인형과 같은 장난감들을 버렸으며 어머니 (matrona)의 역할을 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로마의 여자 아이들의 유년시절은 그들의 첫 임신과 함께 끝났습니다.
고대 로마의 소년들은, 유아시절에서 성인으로 가는 시기가 여자 아이보다 더 긴편인데, 어린시절에 입었던 옷 (toga)을 벗고 성인용 옷 (toga)을 입고 bulla를 버리고 수염을 처음 면도할 수 있을때쯤 성인으로 인정 받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보통 가족들에 의해서 14살에서 18살 사이에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엘리트층의 가족들은 아이가 가족에서 할 미래의 역할과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교육을 마치면 성인으로 인정해주고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남자들은 보통 여성들에 비해서 5년 또는 길게 10년 늦게 결혼을 하지만 엘리트층 사이에서는 이러한 결혼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교육, 놀이 그리고 공적인 삶
7살이라는 나이는 상징적으로 중요한 나이에 속하였습니다. 이 나이때 즈음 이면 특정 집안일을 하거나 가장 기초적인 교육을 이미 받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자집의 어린 남자와 여자 아이들은 이 때부터 정식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집을 떠나 학교를 가거나, 가정교사를 두고 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고대 로마의 여자 아이들은 사회에서 공적인 일을 할수 없었지만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정식교육에는 주로 쓰기, 읽기, 말하기 가 있었으며 이것들은 주로 그리스와 라틴 문학을 통해서 익혔습니다.
또한 이외에도 아이들은 철학,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음악과 같은 다른 과목들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에는 학년이 따로 없었으며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능력과 페이스에 따라서 공부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에 합당하는 엄격한 규율이 뒤따랐습니다.
사실 고대 로마의 많은 벽화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체벌을 받고 공포심을 느끼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엘리트층 자제가 아닌 자유민이나 노예신분의 아이들은 5 살이나 6살 부터 부모의 일을 도와 처음으로 일하기 시작하며 나이가 들면서 점차 부모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보통 수공업을 하는 가족들로 부터 어린시절부터 도제가 되어 미래를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몇몇의 노예 아이들은 주인이 필요하다는 주관적인 판단하에 정식 교육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 도시들에는 아이들의 존재성이 잘 보여지는 자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주사위, 땅콩치기, 공놀이를 하거나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동네 소음과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판, 장군, 영주와 같은 역할극을 하며 노는 모습은 고대 로마사회에서 일반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 이러한 아이들의 즐겁고 활기찬 모습이 담긴 자료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고대 로마에서 11살 꼬마아이가 떨어지는 지붕 타일 조각에 맞아서 사망하거나, Symrna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나무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진 어린아이, 로마의 항구도시인 Ostia에서 소가 끄는 지게에 치여 사망한 어린 아이와 같이 불행한 사건이 적혀있는 역사 자료들도 종종 발견되어집니다.
고대 로마의 아이들은 이외에도 잔인한 검투사경기장에 가기도 하고 공적인 종교 페스티벌이나, 장례식 그리고 축하연에 참석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또한 고대 로마의 종교적인 제례행사에서 합창단이나, 노래하는 역할로 참석하여 의식 행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하는 제례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몇몇의 중산층 아이들은 사제직을 공적인 제례의식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6살 정도된 여자아이는 Vestal Virgin이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 성직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어린이들의 모습은 문학이나 기념물, 예술품 그리고 많은 일상의 물건들에 관찰될정도로 다양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로마제국기에는 어린이들은 미래와 연속성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Ara Pacis 나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과 같은 거대한 기념물에도 아이들의 이미지가 보여지며 그 뿐만아니라 일상생활에 쓰이는 작은 물건부터, 작은 테라코타로 묘사된 어린이들도 많이 발견되어집니다.
건강, 질병 그리고 죽음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기독교와 비기독교에 상관없이 전통적으로 아이가 태어날때 여러명의 기도자들이 갓난아이 주변에서 기도하는 의식을 행합니다.
이는 유아 사망률이 극도로 높은 고대 사회에서 부모의 걱정이 반영된 결과 입니다. 보통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첫 여러해가 가장 위험한 시기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로마의 어린이들은 보통 아이를 낳은 어미의 좋지 못한 건강상태와 주로 수인성에 의한 질병들로 인해 5살이 체되기도전에 셋 또는 둘의 하나는 사망합니다.
의술과 마술, 그리고 질병 치료 및 건강과 관련된 성인들과 신들은 당시 사회에서 따라서 절대로 떼어낼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병을 치유하기위해서 지역의 치료사들과 의술의 신이 모셔져 있는 신전을 찾기도 했으며 기독교인들은 지역 성인들의 묘당에 가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거의 모든 가족들은 그들 아이의 죽음을 경험했으며 이것은 로마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점으로 여겨졌습니다. 죽은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묻히고 아이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념물은 죽은 아이를 한 개인으로 인정한것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손실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어린 유아의 죽음은 다 자란 어린이들과는 다른 형식의 관습과 규칙이 적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1살 이전에 사망한 유아에 대한 애도 기간이 공식적으로 정해진것은 따로 없었습니다.
또한 사망한 어린 유아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도시 밖의 묘지에 묻히기보다는 도시 성곽 사이에 묻히고 장례를 위한 기념물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숙한 아이가 사망할 시에는 대리석판, 제단, 묘곽등을 통해서 아이의 죽음을 기억했습니다.
여기에는 정확한 사망날짜와 년도 그리고 사망한 아이의 나이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아이 생전 최고의 모습과 상상속의 아이 미래의 모습이 묘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식이 정기적으로 부모들에 의해서 열렸습니다.
가치 그리고 어린이들의 약함
고대 로마시대의 아이들의 경험은 사회적 지위, 성별 그리고 가족사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로마 어린이들은 어릴때부터 일찍 일을 시작하며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했으며 여자아이는 거의 노는 시기 없이 바로 일하고 결혼하는 인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오직 엘리트층의 남성들은 어릴때 자유를 만끽할수 있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특히 고대 로마에서의 영아 사망률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아이들은 고대 로마사회에서 미래의 나라를 이끌어나가야할 중요한 일꾼이자 인재였으므로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았던걸로 보여집니다.
Hippo의 Augsustine (in Expositions on the Psalms 48, 1.14)에서는 이를 확인시켜 줍니다.
"행복은 아이들이 곁에 있는 사람들이며 이는 성공이며 그들에게 부를 가져다준다. 그 (로마)는 아이들(미래의 로마)이 있다 그러므로 그(로마)는 죽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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