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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뮤엣인류이야기
[역사/문화] 고대 그리스 로마 남성들에게 "수염"이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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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 주제는 "고대 로마시대 남성의 수염" 입니다.
예전에 올렸던 포스팅에서는 고대 로마시대 헤어 스타일에 대한 글이었는데요. 이번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의 수염 문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수염 기르는 것에 대한 선호도는 제각각인데요, 저같은 경우는 수염을 기르고 싶은 1인중 한명이지만 태생적으로 수염이 잘 안자라고 듬성 듬성 자라서 미관상 좋지 않아서 항상 면도를 하고 다니고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수염에 대한 시대적 분위기와 인식도 많이 달랐지만, 어쨋든 현대에는 이 수염을 통해서 본인의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인건 확실한거 같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도 수염에 대한 어느정도 사회적인 인식이 고대 로마 남성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로마 군인들의 수염이 말끔하게 면도 되어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또한 짧게 생각보다 단정하게 이발한 모습을 봐서는 정말 고대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이발과 면도에 많은 신경을 썼겠구나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습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고대 로마 남성들의 수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기원후 2세기 전까지의 고대 로마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남성의 모습은 단정하게 이발하고 면도한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고대 로마의 가장 힙스터적인 남성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원후 2세기부터인가 고대 로마시대에 발견된 여러 벽화들이나 조각상들로부터 수염을 기를 남성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기원후 2세기경부터 남성들은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걸까?
자, 그래서 이 포스팅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보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인물 중 한명을 꼽으하고 한다면 당연히 줄리어스 카이사르 (또는 시저) 입니다. 줄리어스 카이사르의 연대기 기록가이자 선전가인 Suetonius는 카이사르의 외모에 관해서 이렇게 서술 하였습니다.
"그는 멋쟁이었다...그는 항상 깔끔하게 본인의 수염을 면도하고 다듬었으며
핀셋으로 잔털을 뽑을 정도로 외모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
줄리어스 카이사르가 정갈하게 수염을 깎는것에 대한 역사적 묘사가 있지만 학자들은 고대 로마사회에서 기원전 1세기 부터 깔끔하게 면도하는것이 고대 로마 남성들에게 일종의 멋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 사회로의 면도 문화 도입
사실 고대 로마의 유명한 작가이자 역사가인 플리니 (Pliny)에 의하면 고대 로마 사회에서 남성들이 면도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은 카이사르 집권기에 고대 로마인들이 가장 찬양하고 존경하는 인물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Scipio Ameilanus/Scipio Africanus Minor) 로 부터였다고 합니다 .
스키피오는 바로 카르타고를 무너뜨린 고대 로마 공화정의 장군이자 집정관 (Consul) 이었습니다.
플리니에 따르면 고대 로마 공화정의 오랜 숙적인 이베리아 반도의 누멘시아를 상대로 기원전 146년에 스키피오는 제 3차 정복전쟁을 일으켰는데, 당시 스키피오는 얼굴에 잔털하나라도 말끔히 제거 했을정도로 매일 면도를 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키피오의 이러한 집착에 가까운 면도는 당시 로마 사회에서 혁명적이었으며 스키피오를 영웅으로 찬양하는 로마인들도 이를 따라하면서 일종의 고대 로마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플리니에 따르면 이미 고대 로마에는 이발사들은 스키피오가 있기 전 150년 전 부터 존재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기원전 300년에 시칠리아섬에서 로마로 건너온 그리스인인 Titanius Menas가 로마에 첫 이발소를 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400년 동안이나 고대 로마인들에게 이런 이발소는 그다지 인기있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Titanius Menass는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그리스인으로서 기원전 1세기 까지 수염을 길렀던 로마인들에게 일종의 면도 문화를 들여와 소개했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로마인들의 면도 문화를 살펴보려면 고대 그리스 세계의 면도문화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원전 500년경까지 그리스 세계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관행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고대 그리스의 영웅 조각에 있던 남성성과 지혜를 상징하던 수염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남성다움의 일종의 본보기로 통하는 헤라클라스와 아킬레스를 표현한 조각상들에서 수염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수염없는 모습을 일종의 젊은 활력 (Youthful virility)으로 상징화하게 됩니다.
젊을때가 가장 에너지가 넘친다는점에서, 수염이 없는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에도 잘 나타나는데요,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황제와의 가우가멜라 전투 (The Battle of Gaugamela)가 일어나기전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수염을 자르도록 명했습니다.
이는 전투중 적군에게 수염이 잡히는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복자들 사이에서 수염 자르는것을 모방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많은 그리스인들이 어려보이기 위해서 면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 같은 경우는 이러한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철저하게 군사적인 전략으로서 면도를 했던것으로 보여집니다.
면도 문화에 대한 반발?
하지만 몇몇의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는 면도에대해서 반감을 가진 곳도 있었습니다.
로데스 (Rhodes)섬에서는 제도적으로 남성들이 수염을 깎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비잔틴 도시 (Byzantium)에서는 면도날을 가진 이발사들에게 대해서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면도하는 것을 막는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력이 있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현대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 면도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또한 과거 조선시대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고사성어가 있듯이 몸에 난 어떠한 털들을 깎지 않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것에 반해 고대 그리스 도시들의 이러한 반면도법에 대한 정확한 시행의도는 아직 밝혀진것이 없습니다.
동시대에으 로마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행위는 일반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대 그리스세계와 동방을 재패하기 전까지는 고대 로마의 왕들은 수염을 통해서 자신들의 지위를 과시하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경의 고대 로마 원로원중 한명인 Lucius Quinctius Cincinnatus은 로마를 전란의 위기 속에서 두 번이나 구한 전설적인 인물로 그는 보통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300년경부터는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그리스인 Menas에 의해서 그리스의 면도 문화가 로마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면도=로마다움, 수염=야만스러움
앞에서 스키피오가 면도에 집착적인 면모를 보였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키피오가 면도를 장려한 첫번째 로마의 권력가는 아니었을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는 열렬한 그리스 문화 찬양가 (Philhelene) 였기에 알렉산더 대왕과 같이 깔끔하게 면도 했을수도 있다는 추측을 해볼수는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면도 문화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정하게 면도하는 행위는 로마 남성들 사이에서 보편화 되어갔습니다. 따라서 점차 로마인들은 수염을 기르는 행위를 일종의 야만적인 습성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에 더해 고대 로마에서는 돈이 있으면 누구나 이발소에 가는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으로 정착되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러시아 제국의 황제인 표트르 대제가 중세의 유럽을 서구화 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시행했던 수염금지법이 생각납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대 로마의 사내아이가 인생 처음으로 면도하는 것을 일종의 청년이 되는 기념적인 행위로 간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에 의하면 사내아이가된 청년은 그의 얼굴에 난 털을 잘라서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depositio barbae).
아우구스투스 황제또한 그의 나이 23살에 그의 면도한 잔털들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이 의식에 대해서 고대 로마의 역사가인 Dio Cassius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의식은 로마 시민들을 위한 페스티벌로 연상이 될 정도로 성대하게 치뤄졌다는 점에서 이 거대한 규모의 의식에 쓸데없이 국고가 낭비 되었다고 비판조로 그의 역사서에 서술하였습니다.
네로 황제 또한 그의 면도한 털들을 진주와 금박을 입힌 상자에 가득 넣어서 주피터신에게 바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고대 로마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큰 재난에서 사망한 위인이나 전사한 영웅을 애도하는 동안에는 수염을 길렀습니다. 이에 대한 예로 아우구스투스 Teutoburg 전투에서 전멸한 Quintilius Varus의 군단을 애도하는 동안 수염을 깎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발소: 소문, 면도, 피
이미 앞서 이발과 면도하는 문화가 로마에서는 보편적이었기에, 그만큼 이발소라는 장소는 고대 로마인들에게는 특별한 장소로 여겨졌을걸로 보이며 그만큼 이발소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도 얽혀있습니다.
먼저 이발소들은 손님들의 머리 손질, 이발, 잔털 제거, 면도를 통해서 수입을 얻었으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같은 로마 황제들은 개인 이발사가 있었을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실제로 고대로마사회에서 실력있는 이발사들은 그들의 능력을 인정 받고 더 높은 보수를 받으며 귀족이나 황제들의 미용을 가꾸는 역할을 했으며 몇몇 이들은 원로원 다음가는 사회적 신분인 하급 귀족 계층인 equites 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신분상승을 통해서 이들은 그들만의 토지를 소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였고, 대부분의 이발사들의 신분과 그에따른 생활수준은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발사들은 오직 본인들의 가게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도 로마 시민들의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이발을 하는 일은 가끔 위험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플리니의 기록에 따르면 밖에서 한 노예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는 이발사의 손에 누군가가 실수로 던진 공에 맞아 가위로 그 노예의 목을 베었다거나 아니면 실력이 미숙한 이발사에 의해서 피부에 상처가 났다는 일화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 기록에 추가적으로 언급된바에 따르면 이렇게 손님의 피부에 상처가 날경우에는 한줌의 거미줄을 올리브오일과 식초를 섞어서 상처에 바르도록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거미줄이 고대에 상처 치료로 사용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또한 고대 로마의 이발사들은 동시에 재담꾼 이자 가십거리 전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 역사가는 이발소를 "술 없는 향연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고대 로마인들에게있어서 이발소는 일종의 엔터테인먼적인 장소이기도 했으며 친구들과 같이 이발소에서 잡담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부활한 수염
고대 로마 제국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 이전의 황제들의 모습은 수염이 없는 상태로 묘사되어집니다. 하지만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기준으로 이후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들의 모습에는 수염있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드리아누스 집권기부터는 로마 사회 전체가 가 수염을 기르는 풍조로 돌아가는듯 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Historia Augustus에 따르면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수염을 통해서 지위를 과시하려는 목적보다는 본인의 얼굴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수염을 길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쨋든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수염을 기르자 이후 많은 로마 남성들도 이를 따라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에 대한 예로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의 조소들에 묘사된 많은 로마 시민들과 군인들은 수염을 하고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본인은 스스로의 콤플렉스를 숨길 의도로 수염을 길렀는데 결국에는 근 250년간 유지되었던 사회적 규범이 깨지고 수염을 기르는 행위가 사회 전반적인 트렌드로 변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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