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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 ⟫"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동상" | 이탈리아 르네상스 탄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대 로마 유물 두 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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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 ⟫"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동상" | 이탈리아 르네상스 탄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대 로마 유물 두 개

La Muette 2020. 11. 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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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탄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대 로마 유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4-16세기 무렵 르네상스 운동은 기독교 중심의 유럽사회를 인간중심으로의 변혁을 이르킨 문예 부흥 운동 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들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등이 있지요.

르네상스가 탄생했던 그 시대적 배경으로는, 14세기 중반 무렵 유럽 전체로 흑사병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유럽내 대부분의 인구가 전염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당시 기독교 중심의 유럽 사회에서 단연 "신"은 절대 진리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겨우 살아남은 유럽인들은 흑사병으로 쉽게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했고, 따라서 기존에 굳게 믿고 있었던 절대적인 "신"의 전능함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의구심이 바로 르네상스 운동을 대표하는 인간중심적 사상과 중세시대에 이단으로 배척받았던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재탐구의 시발점이 됩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르네상스 탄생 배경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의구심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이 두 고대 로마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고서는 절대 탄생할수 없었거나, 르네상스 운동은 좀 더 늦게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두 고대 로마의 유물들은, 

 

1. "비트루비루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

비트루비루스의 "건축술에 대하여"가 쓰인 중세 필사본 (1390년대) (출처: Wikimedia)

 

2.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 동상 (The equestrian statue of Marcus Arurelius)" 입니다.

로마 카피톨린 박물관에 전시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이 두 유물 없이 르네상스 탄생에 대해서 논하는것은 불가능할 정도 입니다.

르네상스 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이 유물들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따라서 르네상스의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드넓힐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

 

유럽을 다녀와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유럽의 오래된 많은 건축물들은 웬지 모르게 다 비슷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리석 바닥, 고대 그리스 로마 양식의 프리즈(freize), 페디먼트 (pediment) 그리고 기둥들은 유럽의 많은 오래된 건축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들입니다.

대영박물관의 파사드(정면부), 삼각형의 페디먼트에 프리즈와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클래식 양식

 

무엇보다도 이러한 유럽의 건축 양식이 고대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다시 나타날수 있었던데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의 고대 로마 건축술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도있는 이해와 시대에 걸맞는 재해석으로,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탄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해서 심도 있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해준데에는 고대 로마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 (Vitruvius, 80-70BC ~ 15BC?)가 남긴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가 있습니다.

비트루비우스는 고대 로마 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후원을 받은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자 입니다.

비트비우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그가 남긴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는 고대 로마 시대에서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축술에 대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여러 고대 로마시대의 도시계획, 건축 자재, 공공 건물, 신전, 도로, 수도관들을 포함하는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서 아주 중요한 건축사적 자료로 여겨집니다.

예를들면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양식중에서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코린트식과 같은 여러 형태의 기둥들의 분류법이 최초로 언급되었던것도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 입니다.

또한 비트루비우스는 납중독으로 고통받은 노동자들을 보고 납이 상수도관으로 적절치 않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책에서 로마의 납으로 만들어졌었던 상수도관을 점토 파이프로 바꾸도록 권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트루비우스의 책에는 "유레카"를 외치면서 목욕탕을 뛰쳐나와 왕관에 섞인 금의 양을 밝혀냈던 아르키메데스의 일화가 가장 먼저 담겨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책에는 고대 로마의 혁신적인 건축자재로 알려진 콘크리트와 벽돌이 발명되기 전에 쓰여졌기에 이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사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는 고대 로마시대 이후 중세 시대를 거쳐 여러 필사본들에 기록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필사본들은 1414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인문주의자인 포기오 브라치올로니 (Poggio Braccioloni)에 의해서 재 발견되어져 1450년에 정식으로 출판됩니다.

이후 비트루비루스의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레옹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와 같은 수많은 르네상스 예술가, 사상가, 학자, 건축가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르네상스 학자와 예술가들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책으로 부터 얻은 영감을 그들이 사는 동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재해석하여 그들의 작품에 적용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체 비율에 대한 그림인 비트루비우스 인간(Vitruvian Man)은 비트루비우스의 책에 남겨진 건축 설계와 인체 비율에 대한 연관성에 대한 내용을 출처로 하고 있습니다.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율도 (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재가공한 인체비율도 (우)(출처: wikimedia)

르네상스 건축 분야에서는 당시 운동, 미술, 조각, 미술 이론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만능인 (Universal man)이라고 불리었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비트루비우스의  고대 로마 건축 사상을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에 맞게 재해석하여 기존에 존재했던 이탈리아 건축에 잘 녹여 넣었습니다. 

특히 피렌체에 있는 그의 작품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Façade: 정면부)는 비트루비우스가 말하는 건축의 삼위 일체인 (Triad) - 유용함 (Utility), 강도 (Strength), 아름다움 (Beauty)을 잘 반영하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적 감각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디자인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상 파사드(Facade)(출처: Wikemedia)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 동상

(The equestrian statue of Mracus Aurelius)

중세 유럽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 및 동상들의 발견은 르네상스 조각예술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의 조각상들의 발견으로 르네상스가 꽃 필 무렵 15세기 초부터는 피렌체의 부유층들은 그들의 모습을 한 대리석 두상 또는 조각상들을 고대 로마 시대의 조각상들을 본따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4-15세기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견되었던 여러 고대 로마 조각 및 동상들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 동상 (The equestrian statue of Marcus Aurelius)" 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고대 로마 제국의 5현제 (The five good emperors) 중 한명으로, 철학왕이자, 로마 제국내의 평화의 시대를 일컸는 팍스로마나의 마지막 황제 입니다. 

아우렐리우스 기마 동상이 르네상스 조각사에 그렇게 중요했던 이유는

아우렐리우스 기마 동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것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기마 동상 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그리고 제국의 멸망이후 많은 고대 로마 시대의 동상들이 녹여져 무기나 종 또는 철문으로 재주조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 최초의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제외하면 그 이전의 로마 황제들의 동상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말의 역동적인 모습과 황제의 위엄이 잘 묘사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은 예술적 영감을 얻을수 있는 완벽한 표본 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부유층들은 본인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 고대 로마 황제의 모습과 흡사하게 본인의 기마상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이 중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인 도나텔로(Donatello)의 "가타멜라타(Gattamelata)"의 기마 동상은 특히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 동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파두아의 피아자 델 산토(Piazza del Santo)에 놓여있는 도나텔로의 "가타멜라타"조각상 (출처: Wikimedia)

그러나 도나텔로의 기마상과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사이에 말을 탄 인물을 제외하고 눈에띄는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말의 앞발의 모습입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의 말은 오른 앞발을 치켜 세우고 나머지 세발을 지탱하면서 균형있게 서있습니다.

세 발로 균형있게 서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그러나 도나텔로의 기마상의 앞발 한쪽은 대포 탄환위에 얹혀놓은 상태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는 도나텔로의 능력으로는 아우렐리우스 기마상과 똑같은 말의 동작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에 대포 탄환을 놓아 무게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무엇보다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동상은 도나텔로에게 큰 예술적 영감을 주었으며, 아주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으로부터 느껴지는 인물의 위엄, 힘, 권위를 잘 표현한것은 사실 입니다.

대포 탄환을 지지대로 사용한 모습의 도나텔로의 가타멜라타 기마상

 

이런식으로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의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연구는 화려한 인간중심주의적 예술과, 철학이 다시 꽃 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를 연구 할 수 있었던데에 비트루비루스의 "건축에 대하여"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 동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점은 부인할수 없는점 입니다.

이런식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등과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천재 예술가 또는 학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영감을 얻었을지를 더 잘 이해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에 대하여"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던 르네상스는 없었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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