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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돔 페리뇽: 프랑스 수도승이 만든 최고급 하이엔드 샴페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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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돔 페리뇽: 프랑스 수도승이 만든 최고급 하이엔드 샴페인

La Muette 2022. 5. 28.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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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 랩퍼 제이지 (Jay Z)최애 샴페인 돔페리뇽

오늘날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하고 역사적인 샴페인 중 하나인 돔 페리뇽은 모에 & 샹동의 '프레스티지 큐베(cuvée: 와인 품질) '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급 샴페인중 하나로 여겨지는 돔페리뇽은 사실 평범한 태생의 한 남자의 이름을 따 지어졌습니다.

바로 베네딕트회 수도사인 돔 피에르 페리뇽이 17세기에 당시 와인 생산에 혁신을 가져오는 샴페인을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비록 많은 신화들이 그가 반짝이는 샴페인을 발명했다고 잘못 믿고 있지만, 그는 기존에 있던 와인 제조를 개선하는 많은 방법들을 개척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특별한 와인 제조 방식은 그의 사후에도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같은 여러 유럽 군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와인임은 틀림 없었습니다.

그런데 돔 피에르 페리뇽은 도대체 누구였고 어쩌다가 지금의 최고급 샴페인이 된것일까요?

모엣 샹동 앞에 세워져 있는 돔페리뇽 수도승 동상

 

돔 피에르 페리뇽, 프랑스의 샴페인 지역에서 태어나다

페리뇽은 1638년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생메뉴울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8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었고, 지역 판사의 서기였던 그의 아버지는 몇 개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19살이었을 때, 그는 베네딕토회에 입회했고, 처음에 베르뎅에 있는 생반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봉사했습니다.

1668년, 그는 에페르나이 마을 근처에 있는 호트빌레르 수도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그는 1715년 죽을 때까지 수도원의 지하실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의 지속적이고 진취적인 일 덕분에, 그의 일생 동안 수도원은 포도밭 면적을 두 배로 늘렸고, 그는 그 지역의 와인 제조 명성을 백포도주로 높이 평가받는 곳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페리뇽은 매우 존경받아서 수도원장을 지낸적인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죽자 수도원의 한 구역에 역대 수도원장들과 함께 묻혔습니다.

 

샴페인 제조법을 크게 개선하다

페리뇽이 처음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 궁정은 샴파뉴 지역의 와인이 부르고뉴와 보르도 같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만큼 강렬하고 화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와인을 외면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당시 온지구적인 소빙하기로 인해서 강한 일조량과 일정한 온도가 중요한 와인생산에 큰 타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으로 불리한 기후 조건과 궁정의 외면 에도 불구하고, 페리뇽은 와인 제조 역사에 있어서 혁신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흑포도를 깨끗한 백포도주로 만드는 프레스 공법을 발명했으며, 또한 당시에는 부족한 기후와 와인 제조에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며, 밀봉효과가 더 효과적인 코르크 마개를 개발했으며,  더 강하고 압력에 잘 견디는 '베레 앵글라이'라고 불리는 특수 유리 용기에 와인을 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페리뇽이 가장 유명해진 것은 스파클링 와인 생산법인 '메소드 샹페노이즈'의 도입니다. 메소드 샹페노이즈 생산법은 병에 담긴 와인 시간이 지나면서 2차 발효가 시작되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생성해내어 병을 폭발하시키는 문제를 개선 시켰습니다.페리뇽은 이 생산법으로 와인의 재발효를 막음으로써 폭발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오래된 엽서에 그려진 와인 연구중인 돔 페리뇽

 

"돔 페리뇽", 최초의 개인 브랜드

돔 페리뇽은 수도원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 하기 위해서 와인 개발을 시작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완성된 혁신적인 와인 제조 기술은 그의 또다른 사업감각과 맞물려, 그가 생산하는 백포도주는 파리와 런던으로 팔려나갔습니다. 

그가 생산한 와인에 대한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으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와인을 만들어 판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새겨진 와인은 다른 샹파뉴 지역의 와인들보다 두 배 더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와인 마케팅은 보통 지역이름이나 종교적인 이름을 따온 전통적인 와인 브랜딩 방식이 아닌 최초의 개인 브랜딩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 가장 성공한 첫 사례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돔페리뇽과 얽힌 여러 미신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샴페인의 모습은 위와 같은 모습이지만 이러한 샴페인은 위도우 클리코라는 여성에 의해서 개발된것이다.

페리뇽에 대해서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미신은 그가 샴페인을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거품이 많은 스파클링 샴페인은 사실 1810년대에 프랑스 샴페인 지역의 백포도주 고유의 2차 발효 과정의 균형을 맞추는 기술을 개발한 위도우 클리코라는 여성이 발명한것이라고 합니다. 

'빨리 와라, 나는 별을 맛보고 있다!'라는 인용문도 페리뇽이 처음 반짝이는 샴페인을 맛봤을 때 이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아니고이 문구는 1800년대 후반의 인쇄 광고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페리뇽을 둘러싼 많은 미신들은 1821년에 페리뇽에 대한 이야기를 쓴 하우트빌레 수도원의 후계자 중 한 명인 돔 그루사르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했다고 했으며 대중들에게 교회에 대한 관심과 위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여러 돔페리뇽과 관련된 여러 과장된 이야기들을 지어 냈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또다른 미신으로는 와인 시음시 와인의 종류와 원산지에 구애 받지 않고 온전히 맞을 통해서 와인 고유의 성격을 판단하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는  단어가 돔 페리뇽이 장님 (Blind) 이라는 잘못된 사실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일했던 수도원은 현재 모에 샹동 소유이다.

1937년 모에 & 샹동은 그들의 명성 있는 큐베를 위해 돔 페리뇽이라는 브랜드를 구입했습니다.오늘날, 돔 페리뇽은 프랑스 최고의 갑부 베르나르 아르노가 소유한 모에 헤네시 루이뷔통 (LVMH) 제국의 일부 입니다.세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샴페인 중 하나이며 경매에서 낙찰될 때 종종 입찰 기록을 경신하기도 합니다.

돔 페리뇽이 수도사로 있었던 호트빌레르 수도원의 유적은 이제 모에와 샹동 소유가 되었습니다.

돔페리뇽이 수도사로 있었던 호트빌레르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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