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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왜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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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왜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La Muette 2020. 6. 2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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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감탄이 나올정도로 극도로 정교하게 조각된 파리 개선문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중 하나인 개선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파리 개선문은 프랑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이자 파리의 대표 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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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는 이집트 룩소르 오벨리스크" 입니다. 

 

"오벨리스크 (Obelisk)"란 기본적으로 총 사면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기둥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혀져 그 위에 피라미드 형태의 장식 또는 피라미디온 (Pyramidion)으로 끝을 마무리한 형태의 기념 건축물 입니다.

 

오벨리스크라는 말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어로 Obelos에서 왔으며 이것은 "못 또는 솟아있는 기둥" 이라는 뜻입인다. 

 

대표적으로 런던의 Cleopatra's Needle 오벨리스크, 파리의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뜬금없이 유럽의 몇몇 도시들의 광장에 세워져 있는 걸까요?

 

 

먼저 이 오벨리스크들은 오토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인 무함마드 알리 파샤가 프랑스와 영국과의 친선을 목적으로 선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포스팅에서는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는 룩소르 오벨리스크 (Obélisque de Louxor)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오벨리스크 기단부에는 오벨리스크가 어떻게 룩소르 신전부터 운반되어져 세워졌는지에 대한 과정을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과정을 금박으로 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마 그 당시에 이러한 기술이 유럽에서 선진화된것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랑하기 위함인거 같습니다. 

 

 

현재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에 있는 이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본래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 19 왕조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의 것으로 룩소르 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안에 세워져있었던 두개의 오벨리스크중 하나 입니다.

 

이 오벨리스크에는 고대 이집트 히에로글리프 문자로 람세스 2세를 기리는 기념비적인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룩소르 신전

 

그럼 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어떻게 이집트 룩소르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올수 있었던 걸까요?

 

1833년 12월 21일에 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룩소르, 알렉산드리아 항구 그리고 프랑스의 쉐부르 항구를 거쳐 파리까지 운반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후 3년 뒤인 1836년에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루이 필립 (Louise-Phillipe)에 의해 파리 콩코드 광장에 세워져게 됩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토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인 무함마드 알리 파샤 (Muhammad Ali Pasha)가 선물한 것으로 이에대한 답례로 프랑스는 거대한 장식용 시계를 선물 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답례로 준 이 거대 선물은 운반중에 파손되었지만 아직 시계는 카이로 시타델의 시계탑에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당시의 운반기술로는 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옮기는것은 여러가지 기술적 제한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따로 이 오벨리스크를 위한 49 미터 길이의 평평한 바닥을 가진 거대한 운반선 3척을 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룩소르에서 알렉산드리아 까지는 나일강을 따라서 운반했으며 룩소르 신전에서 나일강까지 이 오벨리스크를 옮기기 위해서 약 300명의 인부들이 직접 하구를 파서 이 운반선을 신전 근처로 정박 시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프랑스의 운반 기술은 영국이 Cleopatra's Needle 오벨레스크를 운반했던 기술보다 30년이나 앞선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위에 그림은 룩소르 신전 입구 앞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를 철거 및 운반 하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콩코드 광장에 있는 이 오벨리스크가 놓여있는 조각상을 놓는 토대 또는 기단부는 원래 루이 16세의 기마상을 놓기 위해서 만들어진것이었지만 1830년 7월 혁명에 의해서 파괴되어지고 대신 이 오벨리스크가 놓여 있게 됩니다.

 

콩코드 광장 중앙에 이 오벨레스크가 세워진 곳 아래에는 황동의 표지판이 있는데 이 표지판에는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는 단두대로 처형되었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받침대에는 금박으로 그 당시에 이 오벨리스크를 세우기위해서 사용된 기계장치에 대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당시 프랑스는 그들의 운반작전과 이 기계장치를 만든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이 오벨리스크 꼭대기는 기원전 6세기 경에 원형의 피라미디온 (Pyramidion)이 도난 당하여 , 프랑스 정부가 대신 1998년에 금박을 입힌 피라미드 형태의 모형을 제작해서 완성시켰습니다. 

 

 

 

위에 그림은 파리 콩코드 광장에 최초로 이 오벨리스크가 세워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가 프랑스 역사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시대적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에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처해진 자리에 세워진것과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어떤면에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운반했다는것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느꼈을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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