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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파리 건축 이야기 2: 그 두 번째 이야기 화려한 벨 에폭의 파리(The Belle Époque, 1871-19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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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파리 건축 이야기 2: 그 두 번째 이야기 화려한 벨 에폭의 파리(The Belle Époque, 1871-1913)

La Muette 2020. 3. 26.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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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건축 이야기 1: 그 첫 번째 이야기 나폴레옹의 파리 (1800-1815)

파리 건축이야기 시리즈 파리 건축 이야기 파리에는 각 시대마다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인데요. 파리에는 중세 시대 때부터 물론 21세기의 건축물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있습니다. 간혹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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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건축 이야기 2: 그 두 번 째 이야기, 화려한 벨 에폭의 파리 

(The Belle Époque, 1871-1913)

 

파리의 벨 에폭 시대의 건축물들은 말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이 시대에는 일반인들이 사는 아파트에도 이 화려한 건축양식이 많이 나타나 파리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실겁니다. 우리는 이 포스팅을 통해서 벨 에폭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벨 에폭 시대에 지어진 파리의 건축물들은 1871년과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지어졌는데요. 이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은 화려할 뿐만 아니라 많은 건축양식적 실험들이 이루어졌기에 그 다양성의 폭도 넓습니다. 벨 에폭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또다시 다양한 건축 양식들로 분류되는데요 여기에는 네오 비잔틴 (Neo-Byzantine), 네오 고딕 (Neo- Gothic), 네오 클레식 (Neo-Classicism), 아트 누보 (Art Nouveau) 그리고 아트 데코 (Art Deco)로 구분 됩니다. 

벨 에폭 양식 건축물들의 공통적인 가장 큰 특징은 호화로움에 있는데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강철, 거대한 판유리, 색이 들어가 있는 타일 그리고 강화 콘크리트와 같은 그 당시에는 새롭거나 전통적인 재료들을 창의적으로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에는 에펠 타워(Eiffel Tower), 그랑 팔레 (Grand Palais), 샹젤리제 극장 (Théâtre des Champs Élysées), 리옹 역 (Gare de Lyon), 봉 마셰 (Bon Marché) 백화점 그리고 헥터 귀마 (Hector Guimard)가 디자인한 파리 지하철 입구가 있습니다. 

배경

1871년 나폴레옹 3세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제3 공화국이 세워집니다. 이후 잠시 동안 파리는 사회주의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 (Paris Commune) 중앙위원회(1871년 3월-5월)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군에 의해서 파리가 재 점령되자, 코뮌 회원들은 벤동 (Vendôme) 기둥을 끌어내리고 16세기 튈러리 궁전, 17세기 파리 시청사 건물, 헌법 재판소, 국립 회계 소, 국가 의회, 재정부 등을 포함한 많은 파리의 랜드 마크 건물들을 불태웠습니다.

 

튈러리 궁전의 내부는 완전히 훼손되고 벽 만 남았고, 오스만 (Haussmann)은 이 궁전을 다시 재건할 것을 요청했지만 제3 공화국 정부는 군주제의 상징인 튈러리 궁전의 벽 또한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현재는 토카데로 (Trocadero) 궁전에서 몇몇 궁전 건물의 조각들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튈러리 궁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파손된 건물들은 원상태로 복원되었습니다.

 

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재건되면서 파리 시민들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세 번의 만국 박람회를 개최합니다. 이 박람회를 통해서 세계 각국의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을 파리로 끌어 모았으며, 이를 계기로 파리의 건축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나게 됩니다. 

 

 

파리 만국 박람회

(Paris Universal Expositions)

 

 

1878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는 지금은 없어진 토카데로 궁전(Palais du Trocadéro) 대신 그 자리에는 샤일럿 궁전 (Palais de Chaillot)이 들어서 있습니다. 에서 무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선보였습니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파리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개회되었고, 이때 사업가인 구스타브 에펠 (Gustave Effiel)에 의해서  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에펠탑 (1897-1900)이 세워졌으며 박람회로 가는 게이트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머신 갤러리 (the Gallery of Machines)가 지어졌습니다. 이 구조물은 현대 엔지니어링 기술과 다채로운 색으로 내부를 장식한 전형적인 벨 에폭 시대의 구조물입니다. 

 

네오 무어 양식으로 지어진 토카대로 궁전 (Palais du Trocadéro)(1876-1868), 현재 이 자리에는 샤일롯 궁전이 있습니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한 게이트로 사용된 에펠탑

 

1878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보였던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은 머신 갤러리 (The Gallerry of Machines)

 

1889년의 새로운 머신 갤러리. 이때도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고 형형 색색의 타일로 내부를 장식했습니다. 

 

1900년도 파리 만국 박람회는 센 강변 동-서쪽을 확장하면서 그 전보다 더 큰 규모로 열렸습니다. 이때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그랑 팔레 (Grand Palais, 대궁전), 쁘띠 팔레 (Petite Palais, 소 궁전) 그리고 퐁 알렉상드르 III 다리 (Pont Alexandre III)가 지어졌습니다. 그랑 팔레는 정면부 (façade)는 보자르 (Beaux-Arts)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는 루이 14세와 15세의 네오클래식 양식을 합친 양식으로서 웅장한 내부 공간을 거대한 유리 천장으로 가려 덮고 가느다란 강철 기둥이 지탱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쁘띠 팔레 (1897-1900)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물의 요소와, 프랑스 네오클래식 장식 요소를 빌려 지어졌습니다. 내부는 그랑팔레에 비해서 좀 더 혁신적으로 디자인되었는데요, 특히 강화 콘크리트와 강철을 이용하여서 빛이 들어오는 갤러리 쪽으로 향하는 구부러진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쁘띠 팔레와 그랑 팔레는 공통적으로 루이 16세의 웅장한 네오클래식 양식을 따랐는데요, 이 양식은 1920년대까지 파리의 아파트와 상업 용도의 건물들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트 누보 (Art nouveau)는 벨 에폭 시대에 가장 유명한 양식으로 대표적으로 헥터 귀마가 디자인한 파리 지하철 역 입구, 16구에 있는 아파트인 카스텔 베랑제 (Castel Béranger, 1898)와, 건축가인 쥘 라비오(Jules Lavirotte)가 설계한 세라믹 조각으로 덮여 있는 집이 있습니다.

 

그랑팔레 (the Grand Palais, 1897-1900), 입구 정면부를 보자르 양식으로 지어 철조구조물의 전시관을 가렸습니다.

 

그랑 팔레 내부, 대성당 같은 느낌을 주는 유리 천장이 가느다랑 철골들로 지탱되어지고 있다.

 

쁘띠 팔레 내부의 굽어진 계단

 

헥터 귀마의 아트 누보 양식으로 만들어진 지하철 입구, Abbesses역

 

종교 건축물

1870년대부터 1930년까지 가장 두드러진 교회 건축 양식은 로마-비잔틴 양식입니다. 이 당시에 가장 대표적인 종교 건축물로는 폴 아바디 (Paul Abadie)가 설계한  사크레 쾨르 교회 (Sacred-Couer, 1874-1913)가 있습니다. 

 

이밖에도 에밀 보드흐메 (Émile Vaudremer)가 설계한 노트르담 오퇴이 (Notre-Dame d'Auteuil), 레옹 고디버 (Leon Gaudibert)가 설계한 성 도미닉 (Saint Dominique) 교회가 거대한 중앙 돔을 가지고 있는 비잔틴 교회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강화 콘크리트로 건설된 최초의 파리 내의 교회는 성 장 드 몽마르트 (Saint-Jean-de-Montmarte)가 있습니다. 

 

사크레 쾨르 교회 (1874-1914)
노트라담 오퇴이 교회 (1878-1892)
네오 비잔틴 양식의 돔을 하고 있는성 도미닉 교회 (1912-1925)
성 장 드 몽마르트 교회 (1894)

백화점 건축물

1852년 아리스티드 부치코 (Aristide Boucicaut)는 파리에 최초의 현대적 백화점인 오 봉 마셰 (Au Bon Marché)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 20년 만에 1825명의 직원과 2천만 프랑 이상의 수익을 얻는 백화점으로 성장했습니다.

 

1869년에 부치코는 강철 프레임에  빛이 들어오는 유리로 덮여있는 중앙 안뜰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백화점으로 확장 건설했습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구스타프 에펠 건축사의 엔지니어인 루이 샤를 벨류 (Louis-Charles Boileau)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백화점의 건축 구조는 이후 파리와 전 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백화점들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바자르 드 호텔 드 빌 (Bazar de l'Hôtel de Ville) 백화점(1866), 쁘렝탕 (Au Printemps) 백화점 (1865), 라사마리땅 (La Samaritaine) 백화점 그리고 갤러리 라파예트 (Galeries Lafayette) 백화점 (1895)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백화점들은 모두 중앙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유리가 설치 되었으며 내부로 발코니가 설치된 각 층의 비워진 중앙을 통해서 자연 빛이 최대한 들어오도록 설계 되어있습니다. 

 

봉 마셰 백화점 내부 (1875)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유리천장과 발코니 (1912)

 

기차역

파리 기차역들의 황금기는 벨 에폭 시대 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기차역들은 박람회를 구경하러 온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도시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1895년과 1902년 사이에 새로 지어진 리옹 역 (Gare de Lyon)은 많은 양의 유리와 강철, 그리고 건축 정면부 (façade)는 보자르 양식으로 꾸며진 시계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역내의 카페들은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위치해 있습니다.

 

1898년과 1900년 사이 파리 중심가에 최초로 지어진 오르셰 역 (Gare d'Orsay, 지금의 오르셰 박물관) 또한 궁정 보자르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오르셰 역은 파리 최초로 전기가 통하는 역이자 보도가 있는 지면보다 살짝 아래로 선로가 놓인 역으로, 나중에 뉴욕과 다른 도시들의 역에서 이를  베꼈습니다.

 

리옹 역 (Gare de Lyon, 1895-1902)
리옹 역내의 "Train Bleu café" 라는 이름의 식당 내부, 벨 에폭 양식으로 내부가 꾸며져 있습니다 (1902)
지금의 오르셰 박물관이 기차역이었을 때의 모습 (1900)
오르세역 내부에 걸린 대형 시계

 

 

주택용 건축물

벨 에폭 시대의 개인 소유 주택과 아파트 건축물들은 보통 보자르 양식, 네오르네상스, 네오클래식 또는 이들이 혼합된 양식들로 지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쁘티 팔레와 같은 스타일의 건물 디자인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건축된 샤를 지오(Carles Girault)의 쇼든 호텔 (Hôtel de Choudens, 1901)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입되면서 아파트 건물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높은 층일수록 부유한 거주민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파리 내의 아파트들의 꼭대기 층은 더 화려하게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리 7구 지역의 콰이 아나톨 프랑스 27-29 번지의 (27-29 quai Anatole-France, 1906) 아파트가 있습니다. 

 

1898년의 건축 정면부 디자인 경쟁에서 헥터 귀마 (Hector Guimard)가 디자인한 중세 건축의 요소와 식물과 꽃에서 영감 받은 곡선형 문양이 있는 아트 누보 양식으로 만들어진 카스텔 벨란제 (Castel Béranger) 아파트의 입구가 대상을 받고, 이후 이 디자인은 당시 파리 지하철들 입구의 전형적인 디자인이 됩니다. 1901년 경쟁에서는 쥘 라비오 (Jules Livriotte)의 세라믹으로 화려하게 조각이 된 라비오 아파트의 입구가 대상을 받게 됩니다.

 

이후, 아트 누보 양식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헥터 귀마의 집인 호텔 귀마 (Hôtel Guimard)를 마지막으로 아트 누보의 양식은 끝이 났습니다. 

 

쇼댄 호텔 (The Hôtel de Choudens, 1901)
콰이 아나톨 프랑스 27-29번지 아파트 (1906)
헥터 귀마의 카스텔 벨란제 (1899)
카스텔 벨란제의 입구
쥘 라비오의 라비오 빌딩 (1901)
라비오 건물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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