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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뮤엣인류이야기
[역사/문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고대 이집트 미라에 대한 진실, 파윰 미라 초상화 (Fayum Mummy Portraits) 본문
[역사/문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고대 이집트 미라에 대한 진실, 파윰 미라 초상화 (Fayum Mummy Portraits)
La Muette 2020. 3. 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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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윰 미아라 초상화 (Fayum Mummy Portraits)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말까지 고대 이집트에서 행해졌던 장례 관습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이 당시 파윰과 이집트 일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죽은 자의 미라의 머리 부분에 마스크 대신 그리스- 로마 미술 양식으로 그려진 초상화를 끼워넣웠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박물관 (특히 런던의 영국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 전시실에 가보면 파윰 미라 초상화 속의 인물들이 묘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초상화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초상화는 이집트 전시실에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알던 그 고대 이집트의 미술 양식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오히려 고대 로마 폼페이와 같은 유적지에서나 볼 법한 미술 양식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 때문에 파윰 미라 초상화는 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파윰 미이라 초상화 세상에 알려지다
파윰 미이라 초상화는 1887년에 이집트 파윰이라고 불리는 지역 근처의 오아시스 부근에서 영국의 고고학자 플린더스 페트리에 의해서 발견됩니다. 본래 페트리의 목적은 이 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경의 고대 이집트 로마 점령기 때 만들어진 무덤을 찾는 거였으나, 오히려 기원후 1세기경의 벽돌로 지어진 무덤을 찾았으며 그 안에서 미라 한 구와 같이 놓여있었던 초상화를 발견했습니다 (벽돌무덤을 찾았을 때 페트리는 약간 실망의 기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초상화의 독특함으로 인해서 다시금 그는 활기를 되찾고 이것에 대한 그의 궁금증을 열정적으로 풀려고 했습니다). 이 초상화는 엷은 회색 바탕에 고전적 스타일 (Classcial style)의 옷과 머리 모양을 한 젊은 여인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페트리는 이 지역에서 발굴을 계속 진행하며 60개의 또 다른 비슷한 초상화들을 발견합니다. 이 초상화들 속 인물들은 마치 살아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사진 찍은 듯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판 영정 사진?). 페트리는 연이어 발견되는 초상화들의 특징들을 그의 고고학 일지에 간단하게 노트했습니다: " 25살 정도 돼 보이는 결혼한 여인", "품격 있는 자태와 모습을 가진 귀족부인" 등 등.
사실 페트리는 이 미이라 초상화를 최초로 발견한 서양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전에 17세기 초에 이탈리아인 탐험가인 피에트로 델 발 (Pietro della Valle)이 현재의 이집트 수도인 카이로 남부의 사카라라고 불리는 지역을 방문했을 때 최초로 이 초상화들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학계에 최초로 보고한 서양사람이자 고고학자는 페트리였으며, 이후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양식의 미술 기법이 사용된 파윰 미라 초상화들은 학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의 양식이 혼합된 미술 기법은 훗날 유럽 기독교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이집트 파윰 (Fayum) 이라는 지역은?
이 미이라 초상화가 발견된 파윰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서 남쪽으로 97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서사하라 사막과 나일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파윰은 본래 고대 이집트 파라오 통치기간 동안 Shedet이라고 불리었으며 이후 기원전 332년에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그 일대를 포함한 이집트 전체가 정복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집트 정복 이후 이집트는 그리스계 왕조인 프톨레미 왕조가 들어서며 약 3세기 동안 지배를 받습니다. 이 기간 동안 파윰 지역에는 왕성한 개간 사업이 진행되며 이에 따라서 이집트의 최대 곡창지대가 되었으며 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 야채, 포도를 생산해내었습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자 다양한 지역과 외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 지역은 이집트 내에서도 그리스인, 로마인들을 포함하는 가장 다문화적인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다문화적인 배경속에서 이집트의 예술, 종교, 언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고고학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당시 관료체제에 속했던 많은 인구들이 그리스어로 쓰고 말할 줄 알았으며 이중에는 Antious, Polion, Soter, Irene과 같은 그리스식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었으며 Ammonius와 같은 그리스-이집트를 혼합한 이름을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당시의 파윰 지역과 이집트 북부지역에 사는 많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의 전통문화와 종교의식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많은 그리스인들은 고대 이집트 사후세계 신인 오시리스를 숭배했으며 이집트식으로 장례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화장이 가장 일반적인 장례 풍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파윰 지역에 정착한 많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이 죽은 자를 미라화 하는 관습을 많이 행했다고 합니다.
전통과 진보 사이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드는 관습은 이미 기원전 2130년도에 끝난 고왕국시대의 엘리트층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미라 만드는 관습은 중왕국 시대에는 다양한 계층에서도 관찰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부터 발견된 미라 들은 천 조각으로 감싸 져 있으며 석고로 만든 장례용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이 가면들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나 양식은 거의 동일하게 관찰됩니다.
고대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 말기와 로마 제국 통치기에 많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이집트로 유입되면서 파윰 지역의 미라 만드는 관습은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단일화된 양식의 전통적인 미라 마스크는 점점 사라지며 그리스와 로마의 현실주의적 미술 양식이 이를 대체 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미라의 마스크 대신 그리스-로마 미술 양식을 따른 초상화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현실주의적으로 그려진 미라의 초상화들은 마치 살아생전의 직업, 성격들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아주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이 초상화들은 한 개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 각기 다른 초상화들로부터 미묘한 스타일적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는데요. 분명히 이 초상화를 그리는데 다수의 화가들이 개입했으며 따라서 그들만의 각자의 고유한 기술과 스타일이 색채와 인물 디자인에 녹아져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오로지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만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소수의 가난한 계층의 초상화들도 발견됩니다. 미라에 초상화를 그리는 관습은 물론 돈 많은 부자들에게 훨씬 많이 발견되며 이들의 인물상 또한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들로 치장되어있습니다.
초상화 속 인물들 그리고 기법
이러한 그리스-로마 미술 양식이 보이는 파윰 미라 초상화 속 인물은 일반적으로 완전 정면이 아닌 반쯤 옆을 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 인물들의 그림자와 감도는 얼굴의 윤곽선을 따라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초상화는 다른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인물이 주는 인상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미술 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계란형 얼굴, 입과 코의 위치 그리고 인물 포즈는 이미 밑그림으로 도식화되었으며 이 위에 각 인물들의 눈썹, 눈, 머리와 같은 각 개인의 신체 특징과 장신구로 꾸며졌습니다.
비록 이 초상화가 어떻게 그려졌는지에 대한 과정은 알 수 있지만 이 초상화들 속 인물들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몇몇 초상화들은 다행히 예를 들자면 "철수, 축구선수"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어로 인물의 이름과 직업이 표시되어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로지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서만 이 인물의 직업과 같은 정보를 유추해 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군인들은 장식 띠를 둘러메고 있으며 육상선수들은 어깨를 노출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른 인물의 중요한 시각적 정보는 각 초상화에 새겨진 특별한 상징이나 기호들을 통해서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초상화 속에는 인물과 7개의 별도 함께 그려져 있는데 이는 그리스-이집트 혼합 신인 세라피스 (Serapis)를 상징하며 다른 초상화들 속에는 황금 잎으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마케도니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왕족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장신구, 의복 스타일, 머리 스타일, 상징, 기호들과 같은 시각적 정보들은 학자들에게 있어서 이 시대의 사회와 문화적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런 초상화들은 주로 나무판에 그려져 있으며 가끔 딱딱하게 말린 리넨천 위에 그려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대의 많은 미라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은 벌꿀과 색소를 섞어서 채색했으며 여러 겹으로 색을 입히는 기법인 납 화법 (Encaustic)을 사용했습니다. 이 기법은 미묘한 명암 처리와 이미지의 감도 표현을 위해서 사용되었으며, 광택이 나는 마무리 기법이라 초상화에서 쉽게 관찰됩니다. 이 기법은 아마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했던 시기에 전해졌던걸로 추정이 됩니다.
파윰 초상화가 후대에 남긴 유산
기원후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황제 1세가 로마제국을 통치하게 되고 제국 전체적으로 기독교를 국교화 및 공고화 시키기 위해서 이집트의 죽은 자를 미라화 시키는 관습을 폐지 시켰습니다. 무려 천년 이상 동안 지속되어왔던 고대 이집트의 종교의식은 이로써 막을 내렸지만 파윰 미라의 초상화와 비슷한 기법으로 그려진 예술작품들은 그 이후에도 관찰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파윰 미라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들 즉 다양한 인물 표현기법, 큰 눈, 그리고 황금색 잎등은 이후 비잔틴 미술 양식, 중세 유럽, 그리고 르네상스 유럽 미술 양식에 수세기 동안 나타납니다. 현재까지 약 1000여 점의 파윰 미라 초상화 판화가 런던, 이집트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래 슬라이드 쇼로 다양한 파윰 미라 그림들을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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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unraveling-mysteries-ancient-egypts-spellbinding-mummy-portraits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magazine/2018/07-08/al-fayyum-egypt-mummies-portraits-history/
https://en.wikipedia.org/wiki/Fayum_mummy_portr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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