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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함무라비 법전, 인류 최초의 법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놀라운 여러 사실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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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함무라비 법전, 인류 최초의 법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놀라운 여러 사실들

La Muette 2020. 4. 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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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랴뮤엣의 인류 이야기 입니다.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미술사학으로 밝혀진 흥미진진한 우리 인류에 대한 스토리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려 합니다. 여러 고대 문명을 포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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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포스팅의 주제는 함무라비 법전 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네 맞습니다. 바로 이 함무라비 법전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이 함무라비 법전이 인류 최초의 법전이라고 배우고 그리고 잔인한 처벌 조항들이 적혀있다고까지 배웠습니다. 

 

오늘은 약간은 상세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이 봤을때 놀라우면서도

어쩌면 야만적일 수도 있는 함무라비 법전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에 대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것과 관련된 간략한 배경 설명을 하자면 함무라비는 기원전 1892년 부터 1750년까지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을 통치했던 왕입니다.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 비문에는 총 282개의 법령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으며, 박물관내에에서도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전시물중 하나 입니다. 

 

비문 뒷편에 빼곡히 쓰여져 있는 법령들

 

함무라비 법전은 인류 최초의 법전이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에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고대 근동 (중동) 지역에는 그시대를 앞선 법전이 이전 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사살 가장 오래된 인류의 법전은 수메르의 우르 라는 도시의 통치자인 우르-남무 (Ur-Nammu)의 법전으로 기원전 21세기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수메르 어로 쓰여진 또 다른 법전은 이신(Isin)이라는 지역의 리핏- 이슈타르 (LIpit-Ishtar) 법전이 있으며 이는 함무라비 법전보다 2세기 앞서있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법전들은 많은 면에서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내용이 많으며 함무라비가 이 법전을 참고하여 편찬 했을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기원후 21세기에 살고 있으니 무려 4000년 전의 것이군요...

고대 중동 문명이 여러번 놀래키는군요.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너무 잔인한 처벌조항들

 

함무라비 법전은 괴상하며 오싹하게 만드는 형벌조항들을 많이 포함 하고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인과응보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가장 쉬운예로,  만일 한 남자가 남의 뼈를 부러뜨린다면 같은 방식으로 그 남자의 뼈를 부러뜨리도록 했습니다.  

 

다른 예들로는

큰 규모의 국가적 경제 사범은 사형,
모자간 근친상간은 화형,
그리고 만일 결혼한 남자나 여자중 한명이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우며 그 배우자를 살해하려는 공모를 저지르면 창에 찔리는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심지어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도 잔인한 형벌이 내려졌는데 예를 들면

 

만일 아들이 아버지를 때린다면, 때린 부위를 절단 하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또한 충분한 물증으로로 입증하기 어려운 범죄들에 대해서는"신성재판"이라는 것이 행해졌었는데요,

이것은 피의자가 목숨을 잃을수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만들어 이것을 견뎌내면 무죄로 인정해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법전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만일 피의자가 강물에 뛰어들어 익사하면 피해자는 이 피의자의 재산과 집을 가진다 하지만 만일 신들이 그 남자를 구원해주고 다치지 않은 상태로 탈출하도록 허락한다면, 고발자가 사형에 처해질것이고 그 강물에 뛰어든 남자는 그의 집을 되찾을 것이다."

무서워서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고발도 제대로 못했을거 같습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원리

함무라비 법전은 사회적 지위와 성별에 따라서 법을 집행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함부라비 법전에는 제대로된 정의라는 개념은 많이 부족했던걸로 보입니다. 어떤 법 조항에서 이르기를...

"한 남자가 다른 이의 이를 부러 뜨린다면 그 다른이도 같은방식으로 이를 부러뜨려도 된다"

라고 명시 되어있지만 같은 하층민일 경우 벌금형만 물리게 되며, 다른 계층일 경우 다른 처벌이 적용 됩니다.

 

예를 들면

"한 남자가 임신한 여자 하인을 죽였다면 그는 그냥 벌금형에만 처해질것이고 만일 임신한 자유민 여성을 죽이면 그의 딸도 사형에 처해진다"

라고 명시 되어있습니다.

 

또한 부부간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남자일 경우 시녀와 노예를 대상으로 간통이 허용되며 가볍게 다른 여성과 만나는 경우에는 내연녀와 함께 유프라테스 강으로 던져질 것이다"

라고 명시되어있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함무라비 법전은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명시 하고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혼, 재산권, 근친상관죄에 관한 조항을 명시할정도로 시간을 앞서간 법전인것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법적으로 진보한 조항은 원시적인 형태의 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을 명시했다는 점 입니다. 따라서 특정 직업들과 이에 대한 최저임금이 동시에 명시 되어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과 목동들에 대해서는 "1년에 8구르(고대 무대 단위)에 해당하는 옥수수를 규정된 임금"으로 명시 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과 소몰이꾼은 6구르를 최소임금으로 받았습니다. 의사일 경우 자유민의 부러진 뼈나 다른 상해를 치료할 경우 5셰켈에 해당하는 은화를 받았으며 자유민이 된 노예에 대해서는 3셰켈을 받고 노예에 대해서는 2셰켈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있습니다. 

 

과연 이 함무라비 법전의 실질적인 법적 효력은?

 

이 함무라비 법전의 발견으로 학자들은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이해 할수 있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에서 이 법전이 어떻게 작용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 주장에 따르면 함무라비 법전 비문에 새겨진 법령들은 아마 그 이전에 만들어졌던 일반법들을 좀더 확장시킨것 일뿐만아니라 과거의 선례들을 열거해놓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또한 몇몇의 역사가들은 이 법전은 실질적인 법적 효력이 없었을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대신 이것은 함무라비의 왕권을 정당화 시키려는 프로파간다의 용도로만 작용했을거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다른 학자들은 이 법전은 공공장소에 배치되어서 누구나 볼수 있게 세졌으므로 어느정도 법적 효력이 작용했을거라고도 주장합니다. 이 함무라비법 비석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논쟁에 참여하여 함무라비의 법 조항들을 읽을수 있으며 무엇이 정당한지를 찾으면 그의 심장은 반가울 것이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그토록 영향력이 강한이유

 

함무라비 법전 비석은 고대 바빌로니아가 멸망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살아남았습니다.

 

함무라비의 바빌로니아 제국은 그가 죽은 기원전 1750년 부터 내리막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1595년 부터는 터키 지방의 신흥 강국인 히타이트 군대가 부유했던 바빌로니아를 약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무라비 법전은 워냑 그 영향력이 강하여 수세기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던 여러 고대 매소포타미아 왕국들에게 있어서 오랫동안 법적인 안내서로 통했습니다. 

 

이 법전을 그대로 옮겨 적는 일은 필경사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숙제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발견된 필경 연습을 했던 점토판들은 대부분 기원전 5세기경의 것들로 함무라비의 사후 1000년 이상동안이나 이 지역에서 학습되어왔었습니다.

 

1000년 이상 이면 강산도 바뀔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여왔단 말은 그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겠네요. 어쩌면 인류의 베스트 셀러라고 여겨지는 성경 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요? 현대에는 인기가 없지만요..ㅎㅎ

 

 

3천년간 잊혀진 법전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세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지는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01년에 현재의 이란지역의 고대 엘람 제국의 수도인 수사(Susa)에서 프랑스의 고고학자인 구스타브 제키에 (Gustave Jéquier)에 의해 재발견이 되기까지 오랫동안 역사속에서 묻혀져 왔습니다.

 

역사가들은 고대 엘람 제국의 왕이었던 슈트룩-나훈트(Shutruk0Nahhunte)가 기원전 12세기 경에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인 시파르 (Sippar)를 습격하여 함무라비 법전 비문을 전리품으로 약탈하여 수사로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중에 엘람 왕인 슈트룩-나훈트가 이 비문의 몇줄을 지웠었던걸로 보여진다고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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